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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유의수필

26-장전리 이끼계곡을 담다





 

장전리 이끼계곡을 담다

 

정 규 


  새벽 3시 스마트폰 알람이 울린다. 평소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기상하는지라 몸이 무거웠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기에 곧장 일어나 욕실로 향한다. 그저께 저녁에 많은 비가 내렸다는 국유림 직원과의 전화 통화는 장전리 이끼계곡에 수량이 많을 것 같은 예감에 이끼 계류 사진을 찍으러 가기 위해서다. 사진을 좋아하는 지인들이 다들 바쁜 관계로 혼자서 갔다 와야 하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지만 신속하게 일어나 준비하는 내 모습이 대견스럽다.

 차에 올라 내비게이션으로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장전리를 찍으니 112km로 예상도착 시간이 오전 5시다. 동트기 전 이른 시각이라 깊은 산속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전국에서 사진가들이 많이 왔을 것 같은 기대감을 가지고 출발한다. 7번 국도를 달리다 동해고속도로로 진입한 후 한 시간여를 지나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어 길고긴 대관령 터널을 지난 후 진부IC를 빠져나와 정선으로 향하는 59번국도를 달린다. 30여분 달리니 장전이끼계곡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차 한 대가 겨우 갈 수 있는 인적이 없는 산길로 들어서니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작년에는 산 길 도로가 장마로 유실되어 500여 미터를 걸어서 간 적이 있다 보니 여러 가지로 걱정이 된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굽이굽이 나있는 산길을 따라 이끼계곡 입구에 도착하니 스타렉스 차량이 한 대 보인다. 누군가가 계곡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출발하면서부터 가졌던 무거운 마음이 가벼워지며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시원한 물소리가 새벽 단잠을 깨고 달려온 노곤한 몸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장화를 신고, 카메라 장비를 준비하여 재빠르게 계곡에 들어서니 먼저 온 사진가들의 인기척이 들린다. 초록의 싱그러운 이끼와 바위 사이를 타고 흐르는 맑고 깨끗한 물줄기가 아름답기만 하다.


 이끼계류 사진의 묘미는 비단결처럼 흐르는 부드러움이다. 물 흐름을 솜사탕처럼 부드럽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10초에서 30초 사이의 저속타임을 확보해야 하므로 꼭 삼각대에 설치하고서 찍어야 한다. 또한 햇빛이 있는 낮에 찍는 사진에 비해 오랜 시간 셔터를 열어야 하니 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빛의 양을 줄여 주기 위해서는 ND필터가 필수다. 흐르는 물의 양이 풍부한 게 무엇보다도 마음을 흥분시킨다. 찍기도 전에 결과물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음이 바빠진다. 계곡 좌측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계곡을 살피면서 오르다 보니 유난히 수량이 풍부하고 무엇보다도 짙푸른 이끼가 아름다운 곳이 눈에 띈다. 이끼를 밟지 않도록 물속을 따라 조심하면서 접근한 후 삼각대를 세우고 구도를 잡기 위해 뷰파인더를 들여다 보니 시원스럽게 흐르는 계곡물과 싱그러운 이끼의 초록색에 순간 숨이 멎는 짜릿함을 느낀다. 카메라를 세팅한 후 첫 샷을 날린다. 25초 타임이 생각보다 길게 느껴진다. 이끼 사진은 해뜨기 전에 찍어야 이끼의 초록색을 선명하게 표현할 수가 있기에 다른 생각 할 겨를없이 멋진 장면들을 찾아 열심히 셔터를 누른다.

  태고의 신비로움이 숨 쉬는 이끼계곡은 언제 보아도 마음이 상쾌하다. 수량이 풍부하니 더할 나위 없는 설렘이고 기쁨이다. 요즘 힐링이라는 말이 생활 속에서 많이 사용 되고 있지만 원시림을 연상케 하는 연초록의 이끼계곡만큼 오감을 힐링하는 것이 이 세상에 있을까 싶다. 바위 사이사이를 돌아 굽이치는 계곡물은 작은 폭포를 이루기도 하고 순간 바위 속으로 숨기도 하면서 마치 생명이 있어 살아 숨 쉬는 듯 흐르고 있다. 물길 사이사이로 물방울을 머금고 가지각색의 바위에 피어 있는 초록 이끼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온통 초록 세상이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무더위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온 몸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조물주가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부담 없이 찾아와 쉴 수 있는 자연이 아닐까 싶다.

  주말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계곡을 찾아서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카메라가 없는 사람도 있고 어린 아이들도 있는 것을 보면 사진을 찍기 보다는 계곡의 시원함을 즐기기 위해 온 사람들도 있는 듯싶다. 물기에 젖은 이끼는 보기보다는 미끄럽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진가들은 장화를 신는데 장화를 신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이끼 보호를 위해 물속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다. 손상된 이끼가 복구되는데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리기에 어느 곳은 이끼 훼손이 심각해서 출입금지를 한 곳도 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나도 사진 찍는다는 명분으로 이끼를 손상시키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겠지만 해도 해도 너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진 찍을 욕심으로 이끼가 나 있는 바위 위에 삼각대를 설치하기도 하고 좋은 구도를 만들기 위해 이끼가 있는 바위를 밞아 수십년 자라온 이끼를 손상시키기도 한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는 이곳도 몇 년 후면 이끼가 망가져서 출입 금지될 날이 올 거라고 말하곤 한다.

 

  산 능선을 비취던 햇빛이 계곡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끼 사진은 햇빛이 들기 시작하면 더 이상 찍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끼가 빛에 반사되어 특유의 싱그러운 초록빛을 잃어버리고 누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시계를 보니 장장 2시간을 찍은 것 같다. 카메라 메모리에 담겨졌을 수십 장의 사진을 생각하니 산을 내려 오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메모리카드에 담겨 있는 사진을 꺼내어 하나하나 살펴본다. 연초록의 숲과 이끼, 우윳빛 같은 하얀 물줄기가 있는 사진을 넓은 화면으로 보니 몇 시간 전에 느꼈던 감동이 배가되어 되살아난다. 몇 장을 포토샵으로 리터칭 하여 개인 블로그에 포스팅한 후 스마트폰에서 다운로드 받아 카카오톡을 통해 몇몇 지인들에게 날리고 카카오스토리에도 올린다. 현재 나의 카카오스토리에는 대략 2천 장, 개인블로그에는 5천 장 정도의 사진들이 포진하고 있다. 가까운 지인들과 친구를 맺어 아름다움을 공유할 수 있어서 더없는 행복이고 기쁨이다. 먼 훗날 몸이 쇠약해져서 가고 싶은 데 마음대로 갈 수 없을 때에 한 장 한 장 들여다보며 지나온 날들을 추억하면서 미소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후손들에게도 정든 블로그를 물려주어 할아버지의 아름다웠던 삶의 정신을 물려 줄 수 있지 않을까?


2013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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