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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유의수필

22-변하는 아이들




변하는 아이들


정  규


  요즈음 아이들의 행동거지(行動擧止)가 심상찮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불안하기 그지없다. 과연 저 아이들에게 이 나라의 앞날을 맡길 수 있을 것인가? 장차 이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과연 이 나라에 미래라는 것이 있을 것인가?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10년 전 아니, 20년 전, 30년 전에도 있었던 이야기들이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 걱정하는 관점과 지금 걱정하는 것은 확연히 차이가 있을 것 같다. 그 단적인 예가 상식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고, 더 심각한 것은 죄의식이 무뎌지다 못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중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20여 년 전의 아이들과 지금의 아이들을 객관적으로 비교했을 때 가치관, 인생관 자체가 확연히 변했다는 사실이다. 20여 년 전에도 말썽꾸러기 아이들은 있었고, 한창 사춘기를 겪으면서 이유 없는 반항, 폭력이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서도 종종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요즈음 일어나는 현상은 사춘기에만 일시적으로 겪는 진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단적인 예가 심각한 범죄가 빈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오늘날 사회 현상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끔찍한 범죄 이면에는 어릴 적 가정환경, 자라면서 받아야할 올바른 교육의 부재 현상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바른 교육이 주어지지 않으면 짐승과 별반 차이가 없이 본능적으로 행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평상시 말투에서 ‘욕’이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욕’은 ‘남을 흠집 내고 욕보이는 말’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욕’이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경우는 폭력 직전의 화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평상심을 잃은 가운데 극한 상태에서 표현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제는 일상 대화의 어휘로서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들을 때는 가슴이 애려 오는데 아이들은 전혀 그런 의식 없이 사용하고 있고 꾸지람 하는 교사나, 부모의 간섭을 오히려 이상한 듯이 바라보고 있다.

  어찌 말뿐이랴. 청소년들의 흡연율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데, 사회적으로 금연구역이 확대 되고 있고, 건강을 위해 기성세대의 금연율이 증가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학교 전체가 금연구역임에도 화장실에서 간간이 담배 냄새가 나는 것을 보면 요즈음 학교안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리서치 조사단에 의하면 청소년의 성경험 비율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중학생 2,8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열 명 중 네 명이 성경험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미 대다수의 교사들은 자괴감에 적극적인 생활지도를 포기한지 오래다.


  학교에서 인성교육과 지식전달을 위해, 교사가 권위를 가지고 소신껏 지도하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하루 종일 엎드려 자는 아이, 시험에 낙제점수를 받아도 귓둥으로 듣는 공부하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 학교에서 긍정적인 사랑의 체벌이, 특별한 대안 없이 일방적으로 사라지다 보니, 교사가 수업시간을 통제할 수가 없으며, 오히려 자식뻘도 안 되는 학생들에게 온갖 모욕적인 언사와 더 나아가 폭행까지 당하는 반인륜적인 만행이 태연히 자행되고 있다. 옛날 같으면 잠자는 아이를 일으켜 세워, 회초리로 손바닥이라도 몇 대 때려 주면 절대로 자지 않던 아이들이었는데.


  우리 교회에 젊은 전도사님이 부임하면서, 내가 근무하는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신학기를 맞이하여 교회학교 청소년부에 나오기 시작했다. 전도사님은 학생들을 열정적으로 사랑하시는 분으로 학생들의 엄마, 아빠보다도 더 잘 아이들의 마음을 받아주고 이해 해주는 분이다. 조건 없이 무조건 우리들을 사랑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닮은 전도사님의 마음이 통하고, 또한, 학생들이 관심 있어 하는 드럼, 기타 등 악기를 잘 다루고, 가르쳐 주다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목소리로 교회가 시끌벅적하게 되었다.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놀이 문화가 주변에 널려 있음에도, PC방에 가기보다는 교회에 와서 드럼도 치며, 기타도 치고, 탁구도 즐기면서 교회 안에서의 새로운 즐거움을 배워가고 있다. 세상을 노래하던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던 춤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율동으로 그들의 삶의 자세가 변하고 있다. 이제 그들의 대화에서 ‘욕’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놀라운 발견은 학교교육, 사회교육의 한계가 교회 교육에서 극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댈 데 없고, 이해 받을 수 없어서 외로움에 지쳐 반작용으로 ‘욕’을 하고 본능적으로 폭력을 사용하던 아이들에게 한 사람의 선한 영향력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일 년이 끝나갈 갈 무렵, 내년도 청소년부를 이끌어갈 임원들을 선출했다. 놀라운 것은 당선된 아이들이, 그 직책은 많은 책임과 의무가 요구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양하지 않고 기꺼이 맡아 주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막 청소년부가 걸음마를 시작한 것 같다. 이제는 걸을 때까지 내일의 희망을 바라보며, 전도사님도 변함없이 힘써 주실 테고, 선생님들도 기꺼이 헌신하리라 믿고 싶다.


  이 세상에 한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말뿐인 사랑이 아닌 온몸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시는 존경하는 임성식 전도사님에게 이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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