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이야기
정 규
가정주부들이 싫어하는 일 중의 하나가 식사 후의 설거지라고 한다. 가족의 건강을 위하여 요것저것 음식을 만드는 일은 나름대로의 사명감과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호기심으로 즐거움일 수 있지만, 식후의 포만감으로 오는 나른함을 이기고 해야 하는 설거지는 대부분의 주부들이 꺼려하는 일이라고 한다. 요즘이야 젊은 부부들의 인식이 많이 변했지만 이 땅의 4,5십대 봉건주의적인 전통문화 속에서 살아온 남자들이 설거지를 한다는 것은 부끄럽고 쑥스러운 일로 인식되고 있다. 50줄에 접어든 나도 예외일 수 없는 시대에 살아왔기에 결혼하고 10여 년 정도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보수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라온 내가 처음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게 된 계기는 아내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지금부터 20여 년 전, 결혼하고 10년 되던 해에 나에게 닥쳐온 대형 교통사고는 우리 가정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안겨 주었다. 교통사고 해결이 늦어짐에 따른 정신적 물질적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전업 가정주부로 두 아이를 키우며 집 안에서만 생활하던 아내는 난생 처음 재정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유아교육도서를 판매하는 영업을 하게 되었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 설명하고 실적을 올린다는 것이 전업주부로만 살아왔던 아내에게는 너무나 벅차고 힘들었으리라.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퇴근하여 저녁 밥상을 준비하는 뒷모습이 힘없어 보였다.
교통사고로 부러진 대퇴부(大腿部)가 1년여 넘게 붙지 않아서 집 안에서도 휠체어로 생활하던 나는 아내의 그런 뒷모습에 죄인처럼 몸 둘 바를 몰랐다. 아침에 급하게 출근하느라 미처 치우지 못한 빈 그릇들이 싱크대에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보면서, 피곤한 몸으로 퇴근할 아내를 생각하며 결혼하고 처음으로 설거지를 하게 되었다. 아내가 설거지하는 모습을 곁눈질해 보기는 했어도 막상 하려니 막막하기만 했다. 트리오를 수세미에 풀어 이물질을 닦은 후 물로 헹구는데 남아 있는 트리오가 잘 씻어지지 않는다. 씻은 그릇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겨우 설거지를 마치고, 퇴근하여 기뻐할 아내의 모습을 생각하며 생뚱맞게 설레기까지 한다.
이윽고 초인종 소리가 나고 파김치가 된 아내가 들어왔다. 잠시 후 저녁 밥상을 준비하기 위해 주방으로 간 아내는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한마디 한다. “이걸 설거지라고 했어! 트리오가 그냥 있잖아! 그릇 밑바닥은 그냥 있네. 설거지했으면 엎어 놓아야지 이렇게 바로 놓으면 물기가 마르지 않잖아!” 잠시라도 아내의 피곤한 심신을 위로하고 싶었는데 이게 웬 날벼락일까. 잠시 후 선반에 올려져 있는 그릇을 다시 내려 설거지하는 아내는 내가 들으라는 듯이 조교가 시범을 보이듯 잔소리를 하면서 능숙한 솜씨로 설거지를 하는 것이었다. 결국 처음 시도한 설거지는 아내의 핀잔으로 막을 내렸다.
조물주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재능을 주지는 않았나 보다. 아내는 음식 만드는 것을 즐겨하지만, 나는 라면 하나 제대로 끓이지 못한다. 해 보려고도 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음식을 만들고 밥 하는 것을 포기한 지 오래다. 아내는 그런 내가 이해가 안 가는지, 무관심해서 그렇다고 하면서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일찍이 포기한 상태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음식과 밥은 아내 몫이고, 설거지는 내 몫이 된 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처음에 설거지할 때는 부끄러움이 앞서 혹시 누가 볼까 봐 전전긍긍하기도 했으며, 초인종이 나면 잽싸게 손의 물기를 닦고 시치미 떼기도 했다. 혹시 부모님이라도 아시면 팔불출이라고 혼쭐이 날 것 같아 절대로 표시나지 않게 했으며, 아이들한테도 설거지하는 아빠의 모습이 처량해 보일 것 같아 집 안에 아무도 없을 때 살짝 하기도 했었다.
이제는 당연히 내가 할 일이고, 그런 나의 행동이 아내에게는 작은 행복으로 다가가는 것을 느끼기에 부끄러움도 친구들의 비아냥거림도 대수롭지 않게 되었다. 출근하는 바쁜 시간에도 할 수만 있으면 나는 설거지를 하고 출근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천성적으로 깔끔한 성품은 못 된다. 그렇다고 지저분한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일매일 쓸고 닦는 것에는 둔감한 편이다. 지금도 양말을 가끔 뒤집어 벗어 세탁기에 넣다 보니 빨래를 개는 아내의 마음을 상하게 하곤 한다. 간단한 행동인데도 잘 고쳐지지가 않는다. 결혼한 지 벌써 30년을 앞두고 있지만 이런 습관들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 어릴 때의 가정교육이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결혼하고 10여 년은 부부 싸움을 많이 한 것 같다. 서로가 자기 가치관과 습관에 상대방을 맞추려고 했기에, 행복해야 할 가정생활에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었던 것 같다. 50줄에 들어선 우리 부부가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적기에 남은 날들이 그렇게 소중하게 다가올 수가 없다.
작년에 딸이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와 인사하러 왔을 때 내가 해 준 한마디가 있다. “앞으로 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포기해라!” 딸과 사위가 순간 무슨 뜻인가 하고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웃으면서 설명해 주었다. ‘서로 포기하라는 것은, 상대방을 내 가치관과 습관에 맞게 고치려 하는 것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아빠가 살아 보니 절대로 고쳐지지가 않더구나.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이해해 주고 사랑하면서 살다 보면 스스로 깨닫게 되어 조금씩 나아지더구나. 행복은 작은 것에서 시작되는 거야’라고.
설거지하는 일이 작은 일이지만, 그 작은 행동에 진실된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음을 우리는 알기에 다른 큰일에도 신뢰가 생기는 것 같다. 사진을 좋아하다 보니 사진동호회 여자 회원들과 어울려 출사(出寫) 가는 일이 종종 있곤 하지만 아내는 절대적으로 나를 신뢰해 준다. 가정의 행복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오랜 세월 살면서 깨달아 가고 있다. 설거지와 같은 작은 행동이 행복의 씨앗이 되어 싹이 트고 자라 튼실한 나무가 된다는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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