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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유의수필

17-제2의 이름, 닉네임




제2의 이름, 닉네임


  사진을 좋아하다 보니 사진동호회에 가입하고, 인터넷 카페 활동을 하게 되었다. 카페에 회원으로 가입할 때 닉네임(별명)을 물어보게 되는데, 대부분 잠시 망설이게 된다. 5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는 우리 카페만 해도 닉네임이 가지각색이고, 어떤 것은 기발하기까지 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하며 또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고물쟁이, 동해바다, 연개소문, 빵공장, 라덴, 마당발, 관음화, 아침햇살, 곡전, 청소명장, 풀잎이슬, 오동추 등등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여 짓는다.

  아기가 태중에 지어질 때 태명을 짓고, 세상 빛을 보게 되면 좋은 이름을 지어 주기 위해 몇날 며칠 생각하고 주변 친지 또는 작명가를 찾아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만큼 ‘나’를 대변할 수 있는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조심스럽고 신중에 신중을 기하게 된다. 닉네임은 ‘나’를 드러내는 제2의 이름이며, 본인 스스로가 직접 지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카페라는 데에 처음 가입을 하다 보니 닉네임이라는 것을 사용한 적이 없어 고민이 된다. 카페 회원들이 나를 부를 때 본래의 이름보다는 닉네임을 부르게 될 것을 생각하니 아무렇게나 지을 수도 없고 나의 존재에 걸맞은 닉네임을 지어야 한다. 사진이 좋아서 카페에 가입을 하게 되었고, 부지런히 다니면서 많이 찍어 보는  것이 최고라는 말에 생각 끝에 ‘마당발’이라고 짓게 되었다. 이 닉네임을 지으면서 열정을 가지고 사진을 찍겠다는 각오를 새삼 하게 되었는데, 다른 회원들은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고 야단이다. ‘마당발’이 ‘마당쇠’로 연상되는 것 같아 짓고 보니 나 자신도 썩 맘에는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금방 바꾼다는 것은 경솔한 행동 같아 미적미적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닉네임으로 쓰게 되었다.

  

  카페 회원들이 500여 명이나 되지만 실상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열정있는 회원들만이 꾸준히 사진을 찍어서 카페에 올리고 있는데, 나를 비롯해서 몇몇 회원들은 거의 매일같이 사진을 올리고 있다. 어느 날 출사지에서 만난 회원이 나를 보고 ‘역시 닉네임답게 열정이 대단하십니다’ 하는 것이다. ‘마당발’이라는 닉네임에 걸맞게 열심히 한다는 뜻이리라. 나 스스로도 닉네임을 지을 때의 마음은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듣는 순간 괜히 기분이 업된다.

  닉네임(nickname)은 외국에서 들어온 말로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디지털 시대에 국어처럼 쓰이는 외래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말로는 별명 또는 애칭으로 번역되고 있는데 그 의미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우리말인 ‘별명’은 “사람의 외모나 성격 따위의 특징을 바탕으로 남들이 지어 부르는 이름” 이라고 국어 사전에는 표기하고 있는데 반해, 대부분의 닉네임은 인터넷상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으로서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스스로가 짓는 자신을 표현하는 별명인 것이다. 어릴 적 어감이 안 좋은 별명을 얻어서 마음에 상처가 되었던 기억을 대부분 가지고 있는데, 그 때의 별명은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더 커서 ‘별명’이라는 말 자체가 혐오스런 어휘로 인식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것 같다.

  닉네임은 개인 스스로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게 되며, 타인에게 자기를 적극적으로 PR하는 디지털 시대에 맞는 제2의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외모를 기준으로 짓기도 하며, 성품, 행동을 바탕으로 또는 앞으로 그렇게 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짓게 된다.

  ‘마당발’이라는 닉네임으로 4년 여 카페 활동을 해 오고 있는데 돌아보면 닉네임에 부끄럽지 않게 다른 사람이 인정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은 것 같다. 사진에 관하여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수준과 남들을 가르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것도 ‘마당발’이 의미하는 부지런함의 결과라고 말할 수가 있다. ‘마당발’은 어느덧 사람들에게 나를 대변하는 단어가 되었고, 제3자도 ‘마당발’ 하면 나를 떠올리게 된다고 한다.


  어느 날 사진을 찍기 위해 산을 오르는데 예전과 달리 숨이 가쁘고 힘이 든다.  이제는 한 자리에서 어슬렁어슬렁 왔다갔다 하면서 한 컷 한 컷을 신중하게 찍게 되었으며, 처음 사진을 시작할 때처럼 뛰어 다니며 찍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초보자와 고수의 차이는 초보자는 쉴 새 없이 셔터를 누르는데 반하여, 고수는 필요한 사진 몇 컷 정도를 찍는다고 한다. 이제는 ‘마당발’이라는 닉네임이 부담으로 다가온다. 체력도 떨어지고 사진을 보는 안목이 생기다 보니 급하게 다니며 사진을 찍을 이유가 없어 새로운 닉네임을 찾게 되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이름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평생을 바꾸지 않고 쓰게 되는데, 제 2의 이름인 닉네임은 필요에 따라 바꾸기도 한다. 어떤 이는 너무 자주 바꾸다 보니 제2의 이름이라는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 같아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다시 만드는 닉네임은 평생을 써야 할지도 모르기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하나의 글자는 푸를 청(靑)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늘 푸르고, 젊게 살고 싶은 마음이다. ‘청’자가 들어가면서 나라는 존재가 잘 표현되며 다른 사람이 부르기에도 무리가 없어야 하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심혈을 기울여 찾은 또 하나의 글자는 ‘부드러울 유(柔)’자다. 푸를 청이 너무 차가운 느낌이 있기에 부드러울 유를 붙여 그 차가움을 상쇄시키는 의미가 있고, 또 그렇게 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 ‘청유(靑柔)’로 결정을 했다. 청유로 결정을 하고 카페에 닉네임을 ‘마당발’에서 ‘청유’로 바꾸고 나니 어떤 회원은 이제야 어울리는 닉네임을 찾았다고 반기는가 하면, 다른 회원은 좋은 닉네임을 왜 바꾸냐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마당발’이 나를 열정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듯이, 새롭게 지은 ‘청유’가 앞으로 남은 나의 생애에 좀더 나은 인격을 갖춘 자로,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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