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우리 주변을 돌아 보면 근심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근심은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해결되지 않은 일 때문에 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함” 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혹시 돈이 없어서 근심하시나요? 그럼 돈이 많으면 근심이 없을까요?
자식이 속을 썩히나요? 그럼 자식이 속을 썩히지 않으면 근심이 없을까요?
병이 있어서 근심하나요? 그럼 건강하면 근심이 없을까요?
여기에 계신 성도님들을 뵈니 인생을 오래 사신 분들이네요. 어떠세요 하루도 근심없는 날이 있던가요? 저도 인생을 조금 살다 보니 삶 자체가 끝없는 근심의 연속인 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앞 장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인해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앞장에 보면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판다고 하셨고, 베드로에게는 내가 가는 곳에 네가 따라올 수 없다고 하셨으며 네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한다고 말씀하셨기에 베드로를 비롯하여 제자들은 근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년 동안 가족을 떠나서 오로지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따라 다녔던 제자들로서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주님이 떠나시면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보는 격이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상황이니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지요. 우리의 깊은 속 마음까지도 꿰뚫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그런 마음 상태를 아시고 오늘 본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 말씀은 그 당시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에 자기 이름을 넣어서 한 번 큰 소리로 외쳐 보시면 좋겠는데 새벽이니까 마음 속으로만 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한 주일 내내 주실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할지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기대하며 묵상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근심에 대한 말씀이 제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본문에 ‘근심하지 말라’는 그냥 평범하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명령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도적질하고, 간음하는 것만이 죄가 아니라 근심하는 것도 불순종의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 주님께서 대책 없이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주님께서 얼마나 간절하셨으면 제자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고 이어지는 말씀에 계속에서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2절-3절에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12절에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14절에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주님이 떠나는 것에 마음 졸이던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서 너희와 영원토록 함께 있게 하신답니다.
18절에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얼마나 간절하셨으면 27절에서 본문 말씀을 또 다시 반복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어떠세요. 이래도 근심하실래요?
한창 일할 40대 남자들이 팍팍 쓰러지는 것은 근심으로 인한 심장병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근심이라는 말을 거꾸로 하면 심근이지요. 심근경색이 되는 것입니다. 2차 세계 대전에서 사망한 미국의 젊은이들이 30만명이랍니다. 그런데 아들과 남편을 전장에 내보내고 근심하여 심장병으로 죽은 사람이 100만명이나 된다고 하니 전장에서 죽은 인원보다 세 배 이상 많은 사람들이 근심과 염려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성경도 근심이 우리에게 미치는 심각한 폐해에 대하여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15:13에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17:22에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성경에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이 몇 번 나오는지 아세요. 1년 365일과 같은 무려 365번 나온다고 하니 매일 매일 깨우치라고 주신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의학 원전에도 “근심은 폐를 상하게 한다” 고 나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근심에도 두 가지가 있다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고후7:10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 세상 근심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근심이요. 반면에 생명에 이르는 근심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 하는 근심입니다. 성도님들은 어떤 근심을 더 많이 하시나요?
신앙생활 하는 까닭에 겪어야 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신앙생활하지 않고 세상에 속해 있으면 겪지 않아도 될 문제지요. 교회 때문에 겪는 고난, 하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우리의 삶 속에서 손해보고 희생해야 하는 일들이 있을 겁니다. 아마도 여기에 계신 분들은 지금까지 신앙생활해 오시면서 교회 때문에, 또 성도들 때문에, 목회자와의 관계 때문에 힘든 시기들을 한 두 번 겪지 않으신 분이 없을 겁니다. 어떠세요.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는 근심의 결과는 어떴던가요? 예, 바로 평안이고, 회복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근심은 세상 근심입니다. 자녀 문제, 사업의 문제, 사람과의 문제, 노후에 대한 문제 등 세상적인 근심을 내려 놓으라고 주님께서는 명령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내려 놓지 못할까요? 아마도 이 시간 속으로 생각하실런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그걸 모르나, 근심하고 싶어서 근심하는 사람이 있나, 잊어버리려 해도 해결되지 않고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산적한 문제들이 너무 많은데 어떻게 근심하지 않을 수 있어. 예, 맞습니다. 아무리 둘러 봐도 해결될 가망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제가 세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 질문은 저와 여기 계신 성도님들께 하나님께서 하시는 질문이라고 생각하시고 속으로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슨 일로 근심하고 있는지 아실까요?
두 번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근심을 해결해 주실 능력이 있을까요?
세 번째 본문에 나오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이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시나요? 세 가지 질문에 ‘예’라고 답하셨나요. 벧전5:7 말씀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하나님께서는 50%만 맡기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모두, 다 맡기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근심을 해결할 길이 없어서 다리 난간에 올라가고 방 안에서 연탄불을 피우지만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의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힘으로는 근심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며칠 몇날 밤을 새워 머리를 짜내도 근심을 이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더욱더 근심이 깊어질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근심을 이길 수 있을까요?
근심의 해답은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두 번씩이나 반복해서 믿음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어지는 14:11절에도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갈릴리 바다에서 광풍으로 인해 성난 파도가 엄습할 때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노련한 어부 출신들이 많은 제자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위기를 탈출하고자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해도 광풍을 극복할 수 없었기에 급기야는 배 뒤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하며 깨웠습니다. 예수님께서 깨어 나셔서 바다를 잠잠케 하신 후에 제자들을 향해 꾸짖었는데, 마태복음에는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마가복음에는 믿음이 없는 자들아, 누가복음에는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라고 꾸짖고 계십니다. 공관복음에는 이와같이 똑같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표현을 썼지만 믿음이 있되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제자들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 믿음이 제자들이 갖고 있는 작은 믿음이 아닌지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이 아닌 작은 믿음은 정말 위급한 상황에서 어쩌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것처럼 주님을 부인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이 먼저 하나님께 구해야할 것은 작은 믿음이 아닌 반석과 같은 믿음, 정금과 같은 믿음을 구해야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봉독하겠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나님의 변함 없으신 약속의 말씀을 믿는 온전한 믿음만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근심을 떨쳐 버릴 수 있는 해답 즉 정답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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