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유의수필

3-그냥 떠나는 가을 여행

청유靑柔 2013. 10. 1. 15:45



그냥 떠나는 가을 여행


  추억 만들기 여행을 위해 네 가족이 적금을 붓고 있는데, 추석 연휴를 맞이하여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여덟 명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이니 즐겁기만 하다. 누가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웃음보가 터진다. 그동안 한번도 웃어 보지 못했던 사람들처럼 그렇게 즐겁기만 한데, 그때 누군가가 ‘영덕대게’가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이었다. 일순간 우리들은 말을 한 당사자를 바라보면서,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여기저기서 가자는 말들이 빗발친다. 재빨리 스마트폰을 이용해 거리를 검색하니 왕복 500km, 점심을 먹고 출발해서 영덕에서 저녁식사로 대게를 먹고 오는 거리로서는 부담스럽지만, 한껏 부풀어 오른 분위기에 그깟 부담쯤이야 문제가 되지 않았기에 우리들의 가을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부산에서 휴전선까지 동해 바닷가를 따라 형성된 7번 국도는 4차선의 시원한 도로와 곳곳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여행가들이 좋아하는 코스 중 하나다. 도로 양편으로는 수확을 앞둔 벼들이 오후의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이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우리들의 기분을 한층 더 배가(倍加) 시키고 있었다.

  사진을 좋아하는 나는‘결국은 사진과 글만이 영원히 남는다’는 평소의 지론(持論)을 바탕으로 일행들의 비아냥거림을 들으면서도 달리던 차를 세워 가며 모처럼 맞는 오후의 햇빛과 환상의 풍광(風光)을 연출하는 자연의 신비로움을 카메라에 담기에 여념이 없다. 휴식을 위해 휴게소에 들러 커피 한잔을 마시며 우리가 달려온 길, 달려갈 길로 분주히 오가는 차량을 바라보는 여유로움도 여행의 한 즐거움이기도.

  호흡을 가다듬으며 일행이 가져온 여행 지도를 펴 보고, 목적지를 확인하고 남은 시간을 계산한다. 급기야 최종 목적지가 정해졌다. 강구항(江口港),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니‘경북 영덕군에서 가장 큰 항구이고 대게로 유명한 곳’이라고 나와 있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남은 거리는 80여 km, 난생 처음 가는 길이지만 내비게이션과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스마트폰은 일찌감치 걱정을 앗아가 버렸다. 문명의 이기가 우리들을 어디까지 이끌 것인가, 과연 불가능한 것이 있을까, 인간의 두뇌는 경이롭다 못해 두렵기까지 하다.

  이윽고 내비게이션이 지시하는 대로 도착한 강구항(江口港), 주차요원이 빈자리로 안내하면서 주차를 유도한다. 여기저기서 호객을 한다. 좌판에는 대게를 비롯한 각종 게 종류가 눈에 띈다. 항구 시장의 떠들썩함이 장시간 운전으로 심신이 지쳐 있는 우리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다.

  우리들은 항구를 구경하기 위해 배들이 정박해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정박해 있는 크고 작은 배, 흰색 빨간색의 등대, 서서히 지고 있는 노을빛으로 한 폭의 그림같은 정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일행들을 멋진 풍광을 배경으로 서게 한 후 카메라에 담는다.  단체 사진과 부부끼리의 다정한 사진을 찍었다. 부부끼리 사진을 찍을 때는 평소의 의젓함은 사라지고 온갖 익살스런 말들로 웃느라 정신이 없다. 아마도 결과물로 나올 사진들이 가관(可觀)이리라. 여행의 즐거움이 이런 것인가? 단순히 영덕대게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깊이 생각할 겨를 없이 달려온 수백 리 길, 평소의 나의 가치관과는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서도 이렇게 즐거울 수가 있다는 것이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인간사의 또 다른 면을 보는 것 같다.

  대게를 본격적으로 먹기 위해 대형 상가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서 흥정하는 소리로 떠들썩하다. 우리가 먹을 대게라고 생각하니 꼼꼼히 보고, 설명을 들으면서 상인의 의도를 파악하기 시작한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상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는 것을 살아오면서 무수히 느끼고 있기에 설명을 들으면서, 간간이 질문도 하면서, 때로는 정곡을 찔러 보기도 하면서 밀고 당기기를 거듭한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말을 하니 주인아주머니가 정신이 없는 것 같다. 일행 중 한 명이 갑자기 지갑을 꺼내면서 주민등록증을 아주머니 앞에 내민다. 무슨 일인가 싶어 유심히 보니, 게 많이 나는 속초(束草)에서 왔다는 것을 주지시키는 것 같다. 그러니 바가지 씌울 생각은 아예 말라는 간접 협박이리라.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해 온 아주머니가 그런 말에 움찔이나 할까 싶다.

  한참 흥정을 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흥정을 하던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와서 한다는 말이 ‘저쪽에서 싼값에 흥정이 되었다’ 고 하는 것이다. 이쪽에서 한참 흥정을 하면서 얼마까지 깎아 달라고 하는데 영 말이 안 먹히던 아주머니가, 저쪽으로 오라는 말을 듣더니 순식간에 우리가 요구한 값으로 주겠다고 한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저쪽으로 가보니 이쪽보다는 크기도 작고 무게도 적으면서 비싸기만 했다. 다시 돌아와 아주머니에게 돈을 지불하고 우리 일행은 아주머니가 안내하는 2층 식당으로 올라갔다. 대게가 삶아지기를 기다리면서도 연신 웃음보가 터지며 우리들의 대화는 즐겁기만 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항구가 여러 가지 색깔의 조명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마침내 고대하던 대게가 삶아져서 다리는 다리대로, 머리는 머리대로 잘 분리되어 우리들 앞에 놓였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우리들은 한 조각씩 들고 속을 팔 수 있는 길쭉한 수저를 이용해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떠들썩하던 자리가 일순간 조용하다. 일행들의 먹는 모습을 곁눈질해 보니, 마치 어린아이가 누가 뺏어 먹을까 봐 씹지도 않고 급하게 삼키는 것처럼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철부지 모습 그대로다.


  돌아오는 길은 어둠이 짙게 내리어 있었다. 내비게이션에서 알려 주는 도착 예정 시간은 저녁 10시 20분, 다시 돌아서 오는 길은 갈 때 보았던 가을 들녘의 아름다운 풍광은 사라지고 간간이 도심의 야경과 그 위에서 비추고 있는 휘영청 밝은 달이 우리들의 가을 여행을 조용히 마무리해 주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여 찍은 사진들을 정리해서 카카오톡으로 일행들에게 날려 주었다. 이윽고 오는 답신들 ‘오늘 하루 너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