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결혼 30주년
결혼 30주년
벌써 결혼 30주년을 맞이한다. 우리 부부는 스물세 살에 만나서 스물다섯에 결혼한 동갑내기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입대하여 6개월 군대 생활하고 바로 중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아 강원도 바닷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학교 담과 붙어 있는 관사에서 혼자 기거를 하게 되었는데, 일자형으로 되어 중앙에 부엌이 두 개가 있고 양 옆으로 방이 각각 두 칸씩 있는 블록으로 지은 볼품없는 관사였던 것 같다. 바로 옆에는 교장선생님과 교장선생님 어머니께서 살고 계셨는데 총각 선생이 혼자서 서툰 솜씨로 밥하고 빨래하며 사는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교장 선생님 어머니께서는 반찬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로 신경 써 주셨던 고마운 기억이 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새벽마다 곤히 자고 있는 나를 깨워 같이 조깅도 하고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면 테니스를 기초부터 자상하게 가르쳐 주셨다. 학창 시절에는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특별히 잘하는 운동이 없었고 운동에 특별한 재능도 없었는데 교장 선생님의 자상하면서도 때로는 엄격한 지도로 테니스를 기본기부터 탄탄하게 배울 수 있었다. 그 때 기초부터 탄탄하게 배운 덕분에 교직 생활하면서 교직원들 간의 테니스 시합에서 중간 이상은 되었던 것 같고, 운동에 취미를 갖게 된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많이 든다.
난생 처음 살아보는 바닷가의 생활은 모든 게 신기하기만 했다. 주말이면 동료 교사들과 바다로 나가 낚시를 즐기며 잡은 고기로 회를 쳐서 먹기고 하고 겨울이면 지금은 엄두를 못 내지만 법에 저촉이 되지 않는 선에서 야산에 토끼 올무를 놓아 산토끼를 잡기도 하면서 즐겁고 신나는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학창시절을 벗어나 사회 초년생으로서 모든 게 새롭고 즐겁기만 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6개월이 지나고 겨울 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대학 시절에 만나 애인 관계를 지속해 오고 있었던 지금의 아내가 다니러 왔다. 아내는 오자마자 총각 혼자서 사는 집이 꼴이 말이 아닌지라 두 손 걷어붙이고 청소며, 빨래며 온 종일 부산하게 움직였다. 나는 옆에서 말도 못하고 그저 겸연쩍게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집안을 깔끔하게 정리하고는 동네 가게에 가서 이것저것 사가지고 와서 저녁 준비를 하는가 싶었는데 금방 멋진 밥상을 차려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방 안에 앉아 단 둘이서 밥상을 마주하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늑하면서도 평화로운 느낌이 온 몸을 엄습해 오는 것 같았다. 시골 동네다 보니 총각 선생이 혼자 있는 집에 젊은 아가씨가 드나드는 모습은 금방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 같았다. 옆에 교장 선생님 어머니께서는 아가씨가 참한 것 같으니 총각 혼자서 고생하지 말고 빨리 결혼하라고 성화시다. 결혼 비용이 없으면 자기가 꾸어 줄 테니 결혼식만 올리고 여기 와서 살면 된다고 재촉하신다.
결혼, 아직은 너무 젊어 미래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기반을 잡지도 못했는데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다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 왔다. 한편에서는 총각으로 있으면 기반 잡기가 쉽지 않고 결혼해야지만 빨리 기반을 잡을 수 있다는 인생 선배들의 조언이 잇따른다. 모아둔 돈은 없지만 평생 보장되는 어엿한 교사라는 직업이 있으니 결혼을 못할 이유도 없을 듯싶어서 진지하게 결혼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어차피 결혼할 사이라면 미룰 이유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대로 반듯한 집은 아니지만 방 두 개 있는 관사도 있으니 살림 몇 가지만 사면 될 듯도 싶었다. 급기야 부모님을 설득하여 한 달 정도 준비한 후 봄방학을 맞이하여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학창시절에 부모님 곁을 떠나 혼자서 생활한 적이 많았던 나에게 신혼생활은 더없이 만족스럽고 행복하기만 했다. 관사 마당에는 작은 텃밭이 있어서 우리들이 먹을 채소들을 가꾸기도 하였고 강아지를 키우기도 했으며, 마당 한 쪽에 토끼장을 지어 토끼도 몇 마리 키웠던 즐거운 추억들이 많이 있다. 퇴근하고 걸어서 20여 분 거리에 있는 약수터로 샘물을 길러 가서 주위에 사람들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아내의 감미로운 노래를 듣기도 했었다.
요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O형과 B형의 관계’ 가 화제가 되고 있는데 이야기인 즉, ‘B형이 볼 때는 O형과 잘 맞는다고 생각하고, O형이 볼 때는 B형의 뒤치다꺼리를 하게 된다. 하지만 같이 있으면 재미있으니까 봐준다’는 식이다. 이 말은 맞지 않는 성격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듯싶은데, O형인 아내는 외향적인 성격인 반면, B형인 나는 내성적인 성격이다. 어느새 달콤한 신혼기는 날아가 버리고 주도권 다툼과 늦은 퇴근으로 인해 자주 부부싸움을 했던 것 같다.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웃도 없고 하루 종일 나만 기다리는 아내는 학교 수업이 끝나고 동료 교사들과의 친목으로 인해 늦는 퇴근 시간이 불만이었다. 시골의 작은 학교에 몇 명 안 되는 교사들인지라 한 사람의 기권은 모임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집에 오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아도 눈치가 보이는 판이다. 지금 같으면 남들이 뭐라 하던 내 생각이 우선인데 그 당시만 해도 내 생각, 내 고집대로 하기가 쉽지 않은 게 직장생활이었던 것 같다. 가정보다는 직장이 우선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던 나는 아내의 불만을 알면서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아내가 섭섭했었던 것 같다.
결혼한 지 1년 후에 첫 딸이 태어났다. 하루 종일 갓난아기와 씨름하는 아내는 퇴근 시간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데 정작 나는 퇴근 후에 이어지는 테니스 운동에 빠질 수가 없다 보니 아내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하는 것 같았다. 어쩌다가 일찍 퇴근하여 어린 딸을 돌봐주기도 하였지만 이상하게도 나한테 오기만 하면 자세가 불편했던지 우는 것이다. 3년 후에는 아들이 태어나 1남 1녀의 자녀를 둔 어엿한 가장이 되었으며 두 명의 아이를 키우는 아내의 수고는 말로는 다 표현 못하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둘도 없이 소중한 우리들의 분신인 아들딸을 갖게 되었는데도 키우는데 들어가는 힘든 일들로 인해 감사함을 모르고 행복한 시간들을 허비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든다. 젊은 나이에 남편의 역할을 잘 알지 못한 상태로 결혼하였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빠가 되었지만 자녀를 어떻게 사랑하면서 키워야 하는지도 모르는 아빠였던 것이다.
10여 년 전에 우리 곁을 떠나 각자의 본분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아들딸이 불쑥 보고 싶은 것을 보면 갓난아기 시절 늘 우리 곁에 있으면서 우리들의 관심을 받으며 살았던 그 시절이 그립고 행복했던 것 같다. 작년에는 어릴 때 아빠의 사랑다운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딸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다. 나의 부족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며 딸과 사위에게 결혼 전에 사회기관에서 진행하는 예비부부학교에 등록해 교육을 받으라는 부탁을 하였고 고맙게도 그렇게 해주었다.
앞으로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더 적을 수도 있지만 아내와 아들딸에게 더 많은 것을 주면서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고 싶다. 30년 전에 잘 하지 못했던 일로 인해 지금 후회하는 일이, 앞으로 30년 후에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
13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