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우리는 한가족
우리는 한가족
‘똘똘이’가 우리 집에 온 것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인(知人)이 강아지 한 마리 키워 보지 않겠냐고 하면서 하얀색의 생후 1년 된 ‘말티즈’를 가져왔다. 첫 눈에 보기에도 까만 눈동자에 순백(純白)의 털이 깜찍하기가 그지없는 강아지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애완동물을 한번도 키워 보지 않은 우리 부부로서는 자신이 없었다. 애완견을 키우는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신경 쓰는 정도가 만만치 않음을 알고 있었기에.
아들딸이 학업을 위해 우리 곁을 떠난 지 10여 년 세월, 우리 부부에게 둘만의 오붓한 대화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특별히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데, 집사람은 거실에서 TV 보면서 뜨개질하기, 주방에서 음식 만들기,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업무 관련 작업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부간에 정담(情談)도 웃음도 사라진 것이다. 중년기의 여성들이 겪는 우울증(憂鬱症)이 집사람에게도 찾아 왔는지 이유 없이 투정이고 신경질이다. 전에는 그냥 넘어가던 사소한 일들도 날카로운 톤의 목소리로 가슴을 후벼 판다. “나 우울증 오니까 어떻게 좀 해 줘!” 하는 절박한 하소연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내가 정신과 의사도 아니고 어찌하라는 건지, 중년기 부부의 위기라는 말들이 무성한데 급기야는 평범한 우리 가정에도 찾아온 것은 아닐까.
우리 부부는 취미가 다르다. 영동극동방송에서 방송되는 ‘맛있는 점심’ 코너를 진행할 만큼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 집사람과 다르게 나는 아직 라면 하나도 제대로 끓이지 못하는 음식에 젬병이, 나는 컴퓨터와 사진에 열을 올리는데 집사람은 아예 그 쪽하고는 담을 쌓고 산다. 집사람은 개콘, 무한도전, 런닝맨, 1박2일 등 오락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 스타일이지만 나는 왜 그런지 그런 프로그램에 별 흥미를 못 느낀다. 그러다 보니 일상사와 자녀 문제 이외는 특별히 나눌 대화가 없는 편이다.
문제의 발단은 집사람에게서 시작되었다. 하얀 말티즈를 보고 온 날부터 껌벅거리던 까만 눈동자가 눈앞에 아른거린다는 것이다. 급기야는 나를 조르기 시작했다. 강아지를 키우게 되면 자기가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다할 테니 동의만 해 달라고 했다. 애완견을 키우는 집에 가면 무작정 좋다고 달려드는 강아지가 소름끼치도록 싫었는데, 도저히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기를 한 달여, 집사람의 거듭되는 간곡한 부탁과 협박에 결국은 두 손 들고 말았다.
말티즈가 처음 우리 집에 오는 날, 집사람은 철망과 둥그렇게 생긴 집과 물을 먹을 수 있는 이상한 통을 사 왔다.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을 보면서 나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동물과 인간이 집 안에서 같이 먹고 자고 한다는 것, 아무 데나 볼일 보면 어쩌지, 도대체 말귀를 알아듣기나 할까,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아니나 다를까 눈앞에서 사라진 순간 말티즈가 어느새 안방 침대에 실례를 하고 말았다. 결국 올 것이 왔구나. 저걸 어쩌나, 기겁을 하고 달려가 붙들고 큰소리로 야단을 쳤다. 마치 어린애가 잘못하면 혼내는 것처럼.
이렇게 난생 처음 동물과 집 안에서 동고동락하기를 3년여 세월, 이름을 뭐라 지을까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였지만 짓지 못하다가 하도 이 녀석이 하는 짓이 똘똘해서 ‘똘똘이’라고 부르던 것이 이름이 되어 버렸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이름값을 한다는데, 이 녀석이야말로 이름값을 120% 하는 것 같다.
아침에 출근을 하려고 가방을 챙겨들면 그 때부터 끙끙되며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출입문을 향해 가면 따라 오면서 바짓가랑이를 물고 가지 말라고 짖어대기 시작한다.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는다. 그 바람에 나의 출근길은 언제나 잽싸게 빠져나오기가 일쑤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나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그러고는 창문으로 하염없이 내다보면서 차가 떠날 때까지 창가를 떠나지 않는다.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으면 어느새 무릎위에 올라와 고개를 파묻고 엎드려 있다. 가끔은 무릎 위에서 코를 골며 단잠을 청하기도 하는 이 녀석을 차마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가 없다. 신기한 것은 특별히 교육하지 않았는데도 밥상 위에 있는 것은 맛있는 고기가 있어도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다. 집사람이 틈틈이 교육을 시켜서 먹이를 바닥에 놓고 손가락으로 다섯을 세면 먹기도 하며, 앉으라면 앉고, 누우라면 눕고, 악수하자면 악수하고(싫은 사람이 악수하자고 하면 절대로 하지 않는다), 하여튼 신통방통(神通旁通)이다. 장난감은 신나게 가지고 놀지언정 종이나 천 등을 찢지 않아서 예쁘다. 늘 볼일은 깔판 위에 예쁘게 한다. 때로는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엉뚱한 곳에 하는 것으로 불만을 표시하기도 하지만.
워낙 뛰는 녀석이라 언젠가는 십자인대(十字靭帶)가 끊어졌는데, 수술하지 않으면 평생 앉은뱅이가 된다고 하기에 기십만 원의 거금을 들여 수술을 시킨 적도 있다. 때때로 걸리는 각종 질병으로, 예방접종으로 또는 먹이, 옷, 주기적으로 털을 깎아 주는 일 등으로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도 만만치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칠 수 없는 것은 부부 사이에 잃어버렸던 웃음과 대화를 찾아 주었으며, 삭막해지기 쉬운 시대에 인간애를 깨닫게 해 주는, 단순한 미물(微物)이 아닌 반려동물(伴侶動物)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보니 개의 수명이 평균 15년은 되는 것 같은데 수명이 다할 때까지 우리는 한 가족으로 살아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