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유의수필

13-제주도, 똘똘이와 여행

청유靑柔 2013. 10. 1. 16:03



제주도, 똘똘이와 여행


  똘똘이는 우리 집에서 3년째 키우는 말티즈의 이름이다. 똘똘이를 우리에게 분양해 준 지인이 직장을 따라 제주도로 이사한 후 아내와 카톡을 통해 사진, 동영상으로 똘똘이의 일상을 주고받고 있다. 애완견도 반려동물로서 가족의 일원이기에 입양 보내고도 좀처럼 잊지 못하는가 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 가까이 지내는 몇 가족이 어울려 두 차례 제주도 여행을 한 후 근 10년 넘게 제주도를 가 보지 못했는데, 마침 결혼한 지 30주년을 맞이하면서 기념으로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문제는 똘똘이를 비행기에 태워야 하는데, 워낙 영악한 녀석이라 신경이 많이 쓰인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 지인도 키우는 말티즈를 별 탈 없이 비행기에 태워 데리고 갔다고는 하지만, 남다르게 예민하고 영리한 똘똘이는 적잖게 걱정이 된다.

  애완견을 짖지 못하게 하는 기구가 있다고 하여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마침 목걸이처럼 목에 걸면 짖으려고 할 때 전기 충격을 주어 짖지 못하게 하는 제품이 있어서 구입을 했다. 제품이 오던 날 실험을 해보니 효과가 너무 좋다. 그런데 똘똘이가 충격을 받고는 완전 얼음왕자가 되는 것을 보니 너무 불쌍하다.


  여행의 즐거움보다는 똘똘이가 비행기 안에서 조용하게 잘 참아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비행기 트랩에 올랐다. 약 1시간 정도의 비행 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가방 속에 갇혀 우리를 바라보는 똘똘이의 눈망울이 애절하다. 영악한 녀석이라 움직이면 충격이 온다는 것을 금방 눈치 채고는 옴짝달싹을 안 한다. 아내가 안쓰러운지 가방 속에 손을 넣고 계속해서 쓰다듬어 주고 있다. 1시간의 비행 시간을 무사히 마치고 공항 대합실에 나와 목걸이를 풀어 주니, 벌써 눈망울이 달라지면서 생기가 돈다.


  마중 나온 지인을 보자, 기억한다는 듯이 반갑다고 얼른 가서 안긴다. 지인은 우리를 만난 것보다 입양 보냈다가 재회하는 똘똘이가 더 반가운지 눈을 떼지 못하고 입을 맞추며 연신 쓰다듬어 준다. 제주도 시가지를 지나면서 보니 10여 년 전에 왔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놀랍게 발전해 있었다.

  지인의 집에 도착하여 예전에 육지에서 가끔 만나서 놀기도 했던, 이름이 미미인 10년 된 말티즈를 본 똘똘이는 한걸음에 달려가 냄새를 맡으면서 반가움을 표시한다. 미미는 귀찮은 듯이 구석으로 피하는데 똘똘이는 자꾸 따라가면서 털을 비비고, 올라타면서 좋아 어쩔 줄 모른다. 밥 먹을 시간이 되어 각자의 그릇에 주었더니 똘똘이가 자기 밥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미미의 밥을 빼앗아 먹고는, 자기 밥을 미미가 먹으려고 하니 밀치고 독차지한다. 순한 미미가 깡패 같은 똘똘이를 만나서 설움이 많은 것 같다.  똘똘이는 쫓고 미미는 도망다니며 어울려 노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못 나눴던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차가운 1월의 바람 소리와 함께 겨울밤이 깊어만 간다.

  아침을 서둘러 먹고 올레길을 돌아보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맑게 갠 하늘이 반갑다고 손짓한다. 제주의 겨울은 육지의 겨울과 달리 따뜻한 봄날을 느끼게 한다. 지인의 집이 올레길과 가까이 있어, 우리들은 똘똘이와 미미를 데리고 걸어서 올레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길가 화단 가득히 순백의 제주 수선화가 아침빛을 받아 이슬방울과 함께 영롱하게 빛을 발한다. 앞장서 가던 똘똘이와 미미도 그런 수선화가 신기했던지 다가가서 냄새를 맡는다. 그런 모습이 아침 햇살과 함께 한 폭의 그림이 연상되어 카메라로 찍는다.

  제주의 바다는 화산 활동에 의해 생긴 검은 색의 울퉁불퉁한 현무암 바위가 대부분이며, 등대 모양도 육지에서 보던 모양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똘똘이도 육지에서 늘 맡던 냄새가 아닌지, 이곳저곳을 정신없이 다니면서 순간 우리의 시야에서 벗어나, 그때마다 부르면 쏜살같이 오다가는 우리를 확인하고 또다시 다른 곳으로 달려가곤 한다.

  아들딸이 장성하여 딸은 결혼하여 미국에서 살고 있고, 아들은 공부하기 위해 우리 곁을 떠나 근 10년을 단둘이서만 살다 보니 하루하루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웃을 일이 없었는데, 똘똘이가 우리 곁에 온 후로는 날마다 톡톡 튀는 애교있는 행동으로 웃게 해 주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이 번 여행도 똘똘이 때문에 제주도로 오게 되었고, 올레길을 걷는 지금 이 순간도 똘똘이의 각본에 없는 돌출 행동으로 대화하는 간간이 우리들은 웃고 있다.


  다음날, 서귀포에 있는 호텔을 예약한 관계로 어쩔 수 없이 우리 부부는 똘똘이를 지인의 집에 떼어 놓고, 이번에는 제주도를 빙 둘러 조성되어 있는 올레길을 차로 이동하면서 관광하기로 하고 출발했다. 오랜만에 단둘이서 여행을 하는 것 같다. 그동안 아이 둘 키워 시집보내고 공부시키느라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어느새 흰 머리털과 검은 머리털이 50대 50인 오십 중반을 맞이하고 있다. 아이들이 어려서 제주도에 왔을 때는 아이들 뒷바라지에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도 안 난다.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아내, 눈가의 잔주름이 눈앞에 스친다. 연애하던 시설, 유독 하얗다 못해 투명하게 보이던 고운 피부였는데….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적을 텐데, 이렇게 인생이 흘러가는구나.

  오설록 녹차 박물관에 들러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니 여행의 긴장감이 풀어지는 것 같다. 두고 온 똘똘이가 궁금하여 지인에게 전화를 해보니, 잘 놀다가도 한참씩 문 쪽을 쳐다본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집에서 우리 부부가 밤늦게 들어가면, 미리 주고 간 밥을 한 톨도 먹지 않고 기다리는 녀석이다. 그러다가 우리가 들어가면 잠깐 아는 척을 하고는 쏜살같이 밥 있는 곳으로 달려가 허겁지겁 먹는다. 그러고 보니 단둘이서 여기까지 오는 내내 우리는 별로 말을 한 것 같지 않고, 더구나 웃은 적이 없는 것 같다. 똘똘이가 같이 왔다면 아마도 말도 많이 하고, 많이 웃었으리라.


  그 다음날, 오후 2시 비행기가 예약이 되어 있어서 서둘러 몇 군데 관광을 하고 지인의 집 앞에 주차를 하니, 벌써 눈치를 챈 똘똘이의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아내에게 한걸음에 달려와 안긴다. 다독거려도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들은 한바탕 웃는다. 지인도 똘똘이와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운지 가슴에 꼭 안았다가 아내에게 건네준다. 미미는 힘들게 하던 똘똘이와 헤어지는 것이 홀가분한지 일어서지도 않고 구석에서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다.

  사람과 동물도 진심은 통하는 것 같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동물도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오랫동안 그리워하고, 그 사람을 위해 식욕도 참으며, 자기의 생명도 아끼지 않는 것을 보면서, 인간사의 어두운 단면들이 순간 뇌리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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