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
고난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
시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해발 3,000m 되는 로키산맥에는 수목한계선이 있다고 합니다. 수목한계선이란 높은 산, 극지와 같은 극한 상황에서 나무가 더 이상 자랄 수 없는 한계선을 말합니다. 이곳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한결같이 매서운 추위와 비바람, 수분의 고갈로 곧게 자라지 못해 줄기와 가지에 옹이가 많고 이리 저리 뒤틀려서 꼭 사람이 무릎 꿇은 모양처럼 낮게 엎드려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낮게 엎드려 있지 않고 곧게 서 있었다면 매서운 눈보라에 부러지고 말았겠지요.
며칠전에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가 보았는데 역시 나무들이 하나같이 키가 작고 구부러지고 뒤틀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세계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은 바로 이러한 극한 상황, 즉 수목한계선에서 무릎 꿇은 모양을 하고 자란 나무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귀를 막 알아듣기 시작하는 어린 아이에게 “힘들고 어려운 것이 결국은 너에게 좋은 것이다”라고 말하면 그 아이가 말뜻을 알아들을까요? 절대로 알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저의 경우를 보아도 청년의 때가지도 이 말씀을 결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듣기는 들었어도 가슴 깊이 울리는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저도 벌써 50 중반이 되었네요. 어르신들 계신데 나이 얘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서른한 살에 속초에 와서 바로 속초교회에 등록을 하고 만 25년이 흐른 것 같습니다.
속초교회에 등록한지 1년만에 안수집사가 되고 안수집사 된지 8년만에 장로가 되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장로가 되지 않았다면 여기에 이렇게까지 오래 살았을 것 같지 않습니다.
장로라는 직분으로 이곳에서 사는 동안 저에게는 무겁고 힘들었지만 쉽게 내려 놓을 수 없는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장로로 섬기기가 너무 힘들어서 교회를 떠날까 생각한 적도 있었고, 왜 저같이 보잘것 없는 자를 세우셨나요? 하소연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무겁게만 느껴지던 이 자리가, 나같이 부족하고 연약한 자를 택하여 사용해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직분을 통해서든 삶을 통해서든 고난을 겪어 보니 제 자신이 조금씩 변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고난 당해 보니 고난 당하는 사람이 이해되기 시작했고 진심으로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군요. 그렇다고 제가 모든 면에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고요 인생을 바라보는 저의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오늘 본문 말씀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라는 말씀이 깨달아지게 되었습니다.
전7:14 말씀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형통한 날도 있고 곤고한 날 즉 고난도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곤고한 날, 즉 고난 받을 때 되돌아 보라는 것은 그 속에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음을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우연히 당하는 고난이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시기 위해 주시는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어떠세요.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시켜 더 크게 쓰시기 위해 주시는 고난인데 피하시겠어요? 힘들어도 피하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고난과 당당히 부딪히며 나아가시길 기도합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모세를 그랬고, 다윗을 그랬고, 요셉을 그렇게 하셨습니다.
처음에 말씀 드린 수목한계선상에 존재하는 나무들은 매서운 추위와 바람 때문에 위로 뻗어나갈 수가 없어서 무릎을 꿇고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무릎을 꿇지 않으면 세찬 바람과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고 부러졌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겠지요. 너무나도 가혹한 환경 때문에, 만약에 나무에게도 의식이 있고 생각이 있다면 수도 없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열악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무릎 꿇고 낮은 자세로 끝끝내 인내하며 비바람을 참아 냈기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나무가 될 수 있었습니다.
고난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계신가요?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선배들이 한결같이 겪었던 불같은 고난, 어쩌다 우연히 당한 고난일까요? 그렇다면 성경에 기록할 이유가 없었겠지요. 왜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에게 고난을 주셨을까요? 수목한계선에서 수많은 고통을 겪고 자란 나무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듯 우리들을 단련하신 후에는 정금같이 쓰시기 위한 하나님의 세밀하신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이 겪으시는 어떤 고난일지라도 그 고난은 우연히 어쩌다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 그 모진 비바람, 눈보라를 겪게 하는 무릎 꿇은 나무처럼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난 앞에 겸손히 낮은 자세로 무릎을 꿇을 때 우리들 역시 깊은 울림을 주는 진실된 사람으로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